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문단 편집) === 소련의 대응 === 당시 소련의 중앙정계는 대단히 혼란스러웠다.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의 사후 [[유리 안드로포프]] 서기장이 승계한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는데 하필 안드로포프의 건강이 매우 나빴기 때문이다. 안드로포프는 자택에서 아침 일찍 미국 군용기가 사할린 남부에서 격추됐다는 1차 보고를 받았다. KGB 의장으로 오래 근무하면서 첩보기 격추는 시인하지도 않고 그저 조용하게 시체만 돌려보내는 것이 관행임을 매우 잘 알고 있었던 안드로포프는 사안의 심각성을 크게 오판, 평소 정찰기를 격추시켰을 때 하던 대로 대응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소련은 미국과 일본에서 사건에 대해 질의하자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아는 바가 없다고 발뺌하였다. [[프라우다|프라우다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비행기가 캄차카 반도에 들어오자 소련 방공군들이 비행기를 착륙을 유도했으나 비행기가 무시했다는 짤막한 기사만을 송고하고 비행기가 격추되었다는 것과 수많은 사망자들이 발생했다는 것은 보도하지 않았다. 9월 1일, 안드로포프가 생애 마지막으로 주재한 정치국 회의가 소집되었는데 그날 제기된 안건은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의 소집, 최고회의 회기 결정, 컬러 텔레비전 모델 선정, 노동 생산성 제고 문제, 이집트와의 무역, 아프가니스탄 무역 등등이었으며 안드로포프는 첩보기를 격추했다는 잘못된 보고만을 받은 상태였다. 안드로포프가 막 회의를 시작하려는 순간 국방장관 [[드미트리 우스티노프]]가 남한 여객기가 추락했다고 보고하였다. 회의가 끝나는 대로 [[크림반도]]로 가서 요양을 계획이었던 안드로포프는 우스티노프에게 조사할 것을 지시하고 신경을 쓰지 않았다. 냉전 시대에 있었던 흔한 정찰기 추락 사건 정도로 여겼으며 그러다 말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사건은 전혀 다르게 진행되었는데 국제사회가 들끓었고 미국이 증거를 제시했다. 미국 측은 KE007편이 소련에 의해 격추되었다는 것을 [[소련군]] 교신을 감청하여 알고 있었음에도 처음에는 침묵하고 있었다.[[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2207465?sid=104|#]] 이는 미국이 감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함이었는데 결국 소련이 계속 격추 사실을 부인하자 '''감청된 녹음을 공개하였다.''' 소련 측은 이를 통해 자국의 군사 통신망이 미국에 의해 감청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사건이 일단락된 후 군 교신용 주파수를 모조리 바꾸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동안 미국은 감청을 통한 소련군의 정보수집에 난항을 겪었다. [[홋카이도]]에 있는 [[일본]] [[항공자위대]] [[왓카나이]] 감청기지에서도 소련 전투기와 지상 관제사 간의 대화를 듣고 있었으며 소련이 계속 변명을 하자 결국 [[일본]] 측이 감청사실을 폭로해[* 적국의 무전 감청을 하고 있다는 것은 당연히 엄청난 기밀이다. 암묵적으로는 서로 감청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을 테지만 아예 주파수를 꿰고 있다는 사실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UN에 자료를 자세히 제시해 준 덕분에 사건의 진상이 밝혀졌다.[[https://m.dcinside.com/board/war/2043640?recommend=1|#]] 일본의 폭로 이후 소련은 왓카나이 기지가 감청하던 군기지들의 무선교신 주파수들을 전부 다 바꿔 버려 한동안 일본 역시 캄차카 지역에 대한 도감청을 제대로 수행할 수가 없었다. 안드로포프는 크림반도에서 요양하다가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보고받았다. 사건의 여파는 심각했는데 서방뿐만 아니라 동유럽에서조차 소련의 대한항공기 격추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안드로포프는 국방부, KGB, 외무부로부터 사건의 실상을 보고받았다. 안드로포프는 먼저 체르넨코에게 정치국에서 절대 양보하지 않고 현재의 태도를 유지하며 어떻게 소련에 대한 제재에 대처할 지 준비하라는 노선을 결정지으라고 지시했다. 체르넨코는 여기에 대해 절대적인 동의를 표하며 9월 2일 자신의 주재 하에 긴급 정치국 회의를 소집하였다. [[소련 공산당]] 정치국원들은 모두 철두철미한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답게 비행기 격추는 정당했으며 미국의 반발은 대 소련 적대시 정책이라고 폄하하였다. 그 어떠한 유감이나 애도도 없었고 오로지 어떻게 격추를 정당화할 것인지만이 논의되었다. 심지어 농업서기였던 [[미하일 고르바초프]]조차 비행기 격추는 적법했으며 공세적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오르가코프 원수는 미국의 계획된 도발행위를 의심했다. 다만 외무장관으로 오래 재임했던 [[안드레이 그로미코]]만이 약간의 국제 감각을 발휘하였다. >사회주의 형제국들과 그 밖의 몇몇 정부에는 통보를 해야 합니다. 미국인들에 대해서는 고식적이고 확고한 대응을 해야 합니다. [[타스통신]]이 희생자들이 발생한 데 대해서 유감을 표시한 것은 적절한 행동이었습니다. 체르넨코는 의견 일치에 대한 만족을 표시하면서 다음과 같은 정치국 결의를 통과시켰다. * 1. 남한 비행기가 8월 31일 소련 영공을 침범한 것과 관련한 문제의 해결책을 승인한다. 침범행위는 제국주의 세력의 고의적 첩보활동에 의해서 유발된 것이다. 이것은 소련의 평화적 주도권을 약화시키기 위한 음모이다. * 2. 중앙위원회 각과들에 대해 선전, 선동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공격적인 노선을 취하도록 위임할 것이다. 이에 따라 9월 2일부터 소련 언론은 일제히 소련 정치국의 결의에 따라 정신승리성 보도를 시전하기 시작했고 9월 7일에야 소련 정부는 특별성명을 발표하고 첩보 임무를 수행하던 비행기가 격추되었다고 밝혔다. 그로미코의 쿠바와 뉴욕 방문 일정도 전격 취소되었다. 블랙박스는 신속하게 인양되었지만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 형식적인 수색작업이 계속되었다. 대한항공 007기를 격추시킨 Su-15의 조종사 겐나디 오시포비치 방공군 [[대령]]은 007기가 민항기인 줄 몰랐으며 창문 사이로 어떠한 인적도 발견할 수 없었고 기체에 대한항공 마크가 없었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그러나 [[소련 붕괴]] 이후 1996년에 민항기임을 알고 있었다고 시인했다. 007편을 격추한 [[전투기]] 조종사인 오시포비치와의 인터뷰 내용 중에 '민항기인 것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미사일 발사 버튼을 누르는데 아무 죄책감도 없었나?'라는 질문이 있었다. 그런데 오시포비치는 당시 007편 꼬리날개에서 민항기 항법 등을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정찰기인 줄 알고 과감하게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한다. 당시 미군에선 일반 여객기에 여러가지 장비들을 달아 군용 정찰기로 써먹기도 했고 정찰기들을 민항기로 위장시키는 페이크를 자꾸 쳐 온 터라 격추 당시에는 민항기인 걸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보나마나 또 민항기로 위장한 미군 정찰기겠지'라는 생각에 과감하게 발사 버튼을 눌렀다고 한다. 때마침 소련 정보부로부터 '해당 지역에 미군 정찰기들이 자꾸 싸돌아다닌다는 첩보를 입수했으니 그 지역 방공부대들은 제대로 정신줄 잡고, 걸리는 놈들은 전부 격추시켜버려.'라고 지시를 받은 터라 확신을 가지고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한다. 이후 사건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보잉 747-200|본인이 격추시킨 비행기]]가 알고 보니 민항기로 위장한 군용기가 아니라 진짜 민항기였음이 밝혀지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